보르헤스의 지도와 실재의 증발
아르헨티나의 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우화 「과학에서의 엄밀함에 관하여」에선 지도 제작술이 극에 달한 어느 제국의 풍경을 묘사한다. 이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은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려는 강박적 욕망에 사로잡혀 끝내 영토와 정확히 1:1 비율을 가진 거대한 지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제국이 쇠퇴하자 사람들은 지도의 유용성을 잃고 이를 방치했고, 결국 영토를 온전히 덮고 있던 거대한 지도는 서쪽 사막의 폐허에서 짐승과 거지들의 거처로 남게 된다. 이 우화 속 이야기는 단순 문학적 상상력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인프라가 지배하는 오늘날 21세기의 인식론적 위기를 비추는 은유이기도 하다.
현대의 알고리즘과 거대 기술 기업들이 구축한 데이터 인프라는 단순히 현실 세계를 모사하는 수준을 이미 초월했다. 이제 모델이 세계 안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모델 안으로 편입되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으로 초정밀하게 렌더링되고 있다. 환경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환경이 되는 이 순환적 현상은 앞선 논의에서 다룬 '인식의 지배'가 어떻게 물리적 현실 공간을 지워버리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가 주창한 '리좀(Rhizome)'적 네트워크는 중앙집권적 위계를 해체하고 무한한 연결의 자유를 약속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탈중심적이고 수평적인 구조는 초기 인터넷의 이상과 부분적으로 일치했으나, 인공지능이 매개하는 연결의 과잉 때문에 지식의 차별화와 '구조 없는 자유의 발작'을 초래했다. 인공지능은 모든 데이터를 동일한 층위로 평준화하여 학술적 사유와 자극적인 바이럴 콘텐츠 사이의 위계를 붕괴시키고 있다. 알고리즘의 바다 위에선 칸트의 정언명령과 15초짜리 숏폼 영상이 동일한 가중치의 데이터 포인트로 취급된다. 반면 정보의 경중을 따지는 인간의 비판적 이성은 점차 방향을 잃어간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리좀의 교차점들을 사유화하며 등장한 거대 플랫폼 영주들은 우리가 누리던 자유로운 연결의 망 위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울타리를 쳤다. 보르헤스의 거대한 지도가 영토의 숨통을 완전히 조여버린 것처럼, 실재를 상실한 인간은 더 이상 대지를 딛고 일어서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고리즘이 배급하는 가공된 정보에 의존한 채 가상의 폐허 위를 배회하는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소유의 종말과 '존재 채굴'의 시대
인류의 경제사와 권력 구조는 가치 창출의 핵심 무대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따라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 왔다. 중세의 권력이 토지와 농경 중심의 물리적 영토에 기반을 두었고, 근대의 권력이 자본과 산업 설비라는 생산 수단의 독점에 의존했다면, 현대 디지털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데이터' 자체가 부의 원천이자 새로운 영지가 된 시대를 선언했다. 필자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존재 채굴의 시대'라 부르겠다.
이 새로운 경제 체제 안에선 대중은 더 이상 단순한 노동력 제공자나 상품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 존재의 모든 궤적 - 일상적 행위, 사회적 상호작용, 무의식적인 감정 상태, 찰나의 주의력에 이르기까지 - 이 실시간으로 데이터화되어 플랫폼의 서버로 흡수된다. 이러한 인간의 경험은 무료로 추출되어 행동 예측 데이터로 가공되며, 이는 다시 '행동 선물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으로 거래된다.
존재 채굴의 구조는 우리가 앞서 다룬 '디지털 감옥' 개념에서 그 파괴력을 드러낸다. 과거의 억압 기제가 신체의 구속이나 법적 처벌이라는 외적 강제에 의존했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감옥은 매끄러운 편의성과 개인화된 추천 알고리즘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이 감옥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대중의 삶의 방식, 가치관, 심지어 인간관계의 맺음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뒤흔들 위험성이 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으며, 겉으론 데이터 보안에 경각심이 뚜렷한 듯 보여도 막상 처한 현실에서의 행동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게 플랫폼 영주가 설계한 인터페이스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이러한 '시초 축적'은 인터넷이라는 공공의 공유지를 사유화하여 사용자를 인터넷 접속의 원천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유의 종말'이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인은 더 이상 자신의 디지털 자산이나 인프라를 소유하지 못하며, 플랫폼 영주가 임대해 주는 디지털 영지에 접속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 데이터를 영구적인 통행료로 지불해야만 하는 종속적 위치에 놓인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클라우드 영주가 하사하는 '농노의 빵'에 만족하는 노예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성벽 밖의 실재를 직시할 전사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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