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01

오류가 허락되지 않는 닫힌 우주

당신이 오늘 오후에 느낀 갑작스러운 우울감, 혹은 퇴근길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물건들은 과연 온전한 당신만의 선택이었을까?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과 변덕만큼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성역이라 믿는다. 하지만 당신이 오로지 '나만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믿었던 그 선택이, 실은 지난주 당신이 스마트폰 화면에 머물렀던 체류 시간과 스크롤 속도를 분석한 알고리즘에 의해 이미 높은 확률로 일어날 사건으로 계산되어 있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19세기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우주의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면 과거와 미래를 완벽히 계산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결정론을 주장했다. 실제로 오랜 시간 철학적 사변으로만 치부됐던 이 주장은,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고도화된 기술적 외피를 입고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현대 인류는 일상적 행위는 물론이고 잠재적 욕망마저 투명하게 분석되고 수치화되는 거대한 '예측의 제국'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단하는 실존적 존재가 아니라, 정교한 통계 모델에 의해 '무엇을 할지'를 사전에 통보받고 유도되는 데이터 포인트로 전락하고 말았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우주의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면 과거와 미래를 완벽히 계산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결정론을 주장했다.

이토록 완벽하게 인간의 미래를 계산해 내는 비결은 최신 신경과학과 인공지능의 정교한 결합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이 순수한 이성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1985년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의 실험은 인간의 뇌가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무려 550밀리초 전에 이미 행동을 위한 무의식적 신경 활성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숙고하여 행동하는 동물이 아니라, 무의식과 감정적 자극에 선행하여 반응하는 존재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충격적인 사례다.

벤저민 리벳
미국의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 1985년 실험을 통해 인간의 뇌가 의식적 결정을 내리기 약 350밀리초 전 무의식적 신경 활동을 먼저 시작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데이터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이러한 신경과학적 통찰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들은 인간의 논리와 이성을 관장하는 신피질을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딥러닝을 통해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패턴을 추출하여, 우리의 생존 본능(파충류의 뇌)과 감정(포유류의 뇌)을 직접적으로 타겟팅한다. 그 결과, 당신의 경제적·사회적 선택 대부분은 이성이 개입해 방어선을 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재설정되고 은밀하게 조작된다.

이 거대한 구조 속에서 시스템의 의사결정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블랙박스(Black Box)' 현상을 야기한다. 거대 권력은 우리의 무의식 구조까지 샅샅이 파악하고 독점하지만, 정작 지배를 받는 인간 스스로는 시스템이 도대체 왜 그런 유도를 실행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정보 비대칭성에 갇히게 된다.

《권력의 문법》의 마지막 여정인 오늘,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실존적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당신의 다음 행동과 감정적 반응이 알고리즘에 의해 100% 예측 가능하고 완벽하게 유도될 수 있다면, 당신은 과연 살아 숨 쉬는 자율적 주체인가, 아니면 그저 정교한 기계 장치의 부속품에 불과한가?

우리는 지금부터 타자의 개입 없이 스스로 규칙을 세우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시스템이 재편해 놓은 이 안락한 예측 경로를 의도적으로 이탈하는 실천적 길을 탐색할 것이다.


Section 02

지배의 종말, 입법의 시작

지난 6화 동안 우리는 권력이 어떻게 우리의 신체를 길들이고, 공간을 구획하며, 언어와 사유의 여백까지 점유해 왔는지 목격했다. 이제 권력은 피비린내 나는 처형대나 노골적인 강제력이 아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액정 화면 뒤에서 작동하는 미시적이고 구조적인 '알고리즘적 조작'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변화의 뚜렷한 차이점은, 이제 새로운 지배 문법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게 만들면서, 실제로는 설계자가 획정해 놓은 최적화된 경로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다크 패턴(Dark Patterns)'을 통해 작동한다.

디지털 시장 환경에서 우리는 '보편적 취약성' 혹은 '존재론적 취약성'이라는 새로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특정 계층만이 겪는 소외가 아니라, 플랫폼에 접속하는 모든 인간이 생물학적·인지적 한계로 인해 거대한 알고리즘 연산 앞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구조적 약자성을 의미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의 감정을 타겟팅하고 무의식의 층위에 접근하여 자율성을 온전히 방어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그 어떤 반항의 의식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왜 이러한 영상을 추천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는 유튜브에게 왜 이런 영상을 추천했는지 설명을 요구할 수도 없으며 대개는 요구할 생각조차도 못한다.

이러한 압도적인 비대칭성 속에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저항은 시스템을 파괴하는 거대 혁명이 아니라, 일상 속 미시적인 행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전략(Strategies)'과 '전술(Tactics)'의 개념을 제시했다.

  • 전략(Strategies): 알고리즘 설계자나 플랫폼 제공자와 같은 '시스템 행위자'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자의 행동을 맵핑, 관리, 조작하기 위해 배치하는 인코딩된 절차.
  • 전술(Tactics): 자신만의 고유한 권력 공간을 갖지 못한 개인들이 시스템이 부과하는 제약 내부에서 빈틈을 찾아 유연하게 대응하는 일상적 실천.

우리가 시스템의 예측 경로를 이탈하는 가장 강력한 전술 중 하나는 바로 '정보 난독화'다. 이는 시스템에 대해 '읽히지 않을 권리(Right not to be read)'를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와 같다. 난독화는 단순히 정보를 숨기는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오해를 유발하는 거짓 데이터나 노이즈를 섞어 넣음으로써 알고리즘의 프로파일링을 마비시키는 기술이다.

구체적인 전술 사례는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다수의 가짜 프로필 혼용: 플랫폼마다 서로 다른 가짜 이름이나 페르소나를 사용하여 파편화된 데이터가 하나의 프로필로 통합되는 것을 방해한다.
  • 식별 불가능한 정보 사용: 개인 신원과 연결되지 않은 범용 계정을 사용하거나, 의도적으로 가짜 정보를 기입하여 데이터 세트를 교란한다.
  • 가시성 로직의 역이용: 알고리즘의 노출 원리를 역이용하여 특정 이슈를 의도적으로 부각하거나 은폐하는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술들은 사용자가 시스템이 설계한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제한된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정한 권력은 타인을 통제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미리 정해둔 '최적의 문법'을 거부하고, 예측 경로를 의도적으로 이탈하여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율성'과 '주체성'에 있다.

우리는 이제 알고리즘이 배포하는 매끄러운 정답 뒤에 숨은 '인식적 억압'에서 깨어나야 한다. 비록 고통스럽고 비효율적일지라도, 적어도 인간이라면 자신의 두 발을 딛고 서서 세계를 해석하는 주권자가 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오늘 이 시간,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시스템의 데이터 포인트로 남기를 거부하고 자기 삶의 규칙을 직접 제정하는 '입법자'가 되는 길을 탐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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